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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말만 하더라도 '한국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9단이 집밖을 나서면 동네아낙들이 뒤에서 "저기 노름대장이 지나간다"고 수군댔다고 한다. 한때 바둑이 도박의 온상으로 인식돼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인 양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칼이라도 주부가 쓰면 맛깔스런 음식을 장만하는 이기가 되지만 도둑이 쥐면 흉기가 된다. 아무리 이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쓰임새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법이다.
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 이후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하던 강원도 남부의 광산도시 태백이 요즘 '국제 카지노 도시건립'이다 '관광특구 지정'이다 하여 반짝 활기가 돌고 있다. 떠날 사람은 이미 다 떠나고 오갈 데 없이 남은 사람들이 안간힘을 쓰며 벌이는 이런 자구의 노력은 바둑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삼척시 도계읍의 도계국민학교는 석탄경기가 활황일 땐 72개 학급에 교감을 2명씩이나 둔 도내 최대규모의 교세를 뽐냈다. 그러나 지금은 23개 반. 당장 이번 6학년 6개반이 졸업으로 빠져나가면 또 4개 반의 결손이 눈에 뻔히 보인다. 학생수의 감소는 이 지역 몰락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공부하는 교실보다 빈교실이 훨씬 많은 현실. 빈교실은 관리하기도 버거울 뿐 아니라 어떤 경우는 청소년들의 비행장소로 악용되기까지도 한다. 이러한 골칫거리를 해결하는 묘수를 최근 도계국민학교가 선보이고 있어 교육계와 바둑계의 관심을 끌었다.
'빈교실 활용 묘수'의 입안자는 도계국민학교 체육주임 최승길(45세) 선생. 그는 교내 빈교실 한칸을 바둑교실로 배당하여 바둑특활반을 지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했다. 말하자면 상설 야간기원이 된 것.
읍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대단했다. 특히 학부형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적극 협력, 아예 즉석에서'정석회'란 읍내 기우회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낮에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밤에는 학부형들이 하루 노동의 피로를 수담으로 말끔히 씻는 곳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바둑교실은 교내에서 학생들이 아닌 학부형들이 손수 꾸민 유일한 고급교실(?)이 되었고 전보다 더 학교의 어려운 점을 이해해주게 되었다.
문화시설이 낙후한 산간벽지 광산도시에서의 이런 사례는 이농현상으로 빈교실이 넘쳐나는 농촌에서도 참고가 될만한 답안으로 보인다. 바둑이 한갓 취미오락에서 벗어나 교육의 보조교재로서, 생활문화로서 자리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삽화 한 토막이었다.
- 스포츠서울 [정용진의 바둑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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